제부도 당일 여행, 아트파크
작년 가을,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어느 토요일 아침, 우리는 서울에서 출발해 제부도로 향했다. 차로 약 1시간 반 남짓, 도시의 회색 건물들이 점차 줄어들고 수평선 너머 바다가 보이기 시작할 때쯤, 제부도의 분위기가 우리를 반겼다. 제부도는 하루 두 번 물길이 열리는 섬으로, 물때를 잘 맞추면 바닷길을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물이 빠진 직후로, 드넓은 갯벌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고, 바다 위로 난 도로를 따라 차들이 천천히 섬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제부도는 생각보다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섬이었다.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이지만, 우리가 찾은 평일에는 한적한 가을 정취가 더욱 짙게 느껴졌다. 섬을 한 바퀴 도는 드라이브 코스도 좋지만, 우리는 걸어서 천천히 둘러보는 쪽을 택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제부도 아트파크. 컨테이너와 해변 산책로를 활용해 만든 이 예술 공간은 작은 섬 속의 상상력 놀이터 같았다. 컨테이너 벽마다 그려진 트릭아트 그림과 조형물들이 지루할 틈 없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가을 햇살 아래 반짝이는 바다를 배경으로 조형물들이 만들어내는 실루엣은 마치 예술 사진 속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천천히 걸으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그 순간순간을 가볍게 기록했다. 조형물 사이사이에는 커다란 거울이 설치되어 있어 색다른 포토존이 되기도 했고, 예술과 놀이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구조 덕분에 우리는 아이처럼 신나게 웃을 수 있었다. 감각적인 벽화 사이를 걷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친구와 평소 나누지 못했던 얘기들도 자연스럽게 오고 갔다. 조용한 섬의 미술관처럼, 아트파크는 제부도 여행의 문을 열어주는 아주 특별한 공간이었다.
매바위와 탑재산
아트파크에서 느긋한 산책을 마친 후 우리는 제부도 남단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매바위. 지도상으로는 그저 바위라고만 표시되어 있었지만, 막상 도착하자 그 신비로운 자태에 눈을 뗄 수 없었다. 매바위는 마치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려는 매의 부리처럼 생긴 3개의 큰 바위섬으로, 밀물과 썰물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간조 시간으로 바위의 아랫부분까지 모두 드러나 있었고, 바위 주위로 물웅덩이와 갯벌이 펼쳐져 있었다. 바위 주변으로는 조용히 노니는 물새와 게들이 어우러져 서해의 생태적 아름다움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파도 소리와 함께 고요한 갯벌 위에 우뚝 솟은 매바위는 사진보다도 훨씬 더 인상 깊었다. 바위의 결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고, 그 주위를 돌아다니는 새들까지도 하나의 장면처럼 보였다. 매바위는 단순한 풍경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었다. 자연이 만든 조각품처럼, 이 바위 앞에 서면 누구나 잠시 말을 멈추게 된다. 친구와 나도 각자 조용히 그 풍경을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는 그 바위 앞에서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었고, 물 빠진 길을 따라 바위 가까이 다가가기도 했다. 매바위에서 감성을 가득 충전한 후 우리는 제부도에서 가장 높은 지점, 탑재산에 오르기로 했다. 높이는 높지 않지만, 짧고 굵은 오르막 코스가 숨을 차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만큼 정상에서의 보상은 컸다. 등산로는 잘 정비되어 있었고, 길을 따라 군데군데 놓인 전망대 덕분에 오르는 내내 바다를 곁에 두고 걸을 수 있었다. 산책하듯 오르던 중간중간 붉게 물든 단풍나무들이 가을의 깊이를 더해주었다. 정상에 도착하자 눈앞에는 서해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멀리 제부도의 해안선이 이어지고, 전곡항과 해상 케이블카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정상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친구와 찍은 셀카는 지금도 스마트폰 속 즐겨찾기 폴더에 남아 있다. 땀을 흘리며 오른 그 산에서의 바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힐링이었다.
선희네 칼국수에서 마무리
탑재산에서 내려오니 어느새 해가 기울기 시작했고, 바닷바람에 허기가 돌기 시작했다. 제부도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선희네 칼국수'를 목적지로 정하고 곧장 향했다. 식당은 소박한 외관이지만, 이미 많은 블로그와 유튜브에 소개된 맛집답게 입구에는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다행히 우리는 타이밍 좋게 조금만 기다린 후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바로 주문한 메뉴는 역시 대표 메뉴인 바지락 칼국수. 기본 반찬들과 함께 뜨끈한 국물이 곧바로 나왔고, 첫 숟가락을 떠먹는 순간 입안 가득 바다 향이 퍼졌다. 바지락이 잔뜩 들어간 국물은 맑고 시원했으며, 면발은 수제처럼 쫄깃했다. 특히 추운 바람을 맞으며 걸어 다닌 하루 끝에 이 한 그릇은 몸과 마음을 동시에 녹여주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함께한 따뜻한 식사는 단순한 한 끼를 넘어, 오늘 하루를 풍성하게 채우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옆 테이블에선 해물파전과 함께 막걸리를 곁들이는 커플도 있었고, 단체 가족들도 푸짐하게 상을 차려놓고 식사 중이었다. 소란스러움 속에서도 정겨운 분위기가 느껴졌고, 이곳이야말로 제부도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장소였다. 친구와 국물을 나누어 먹으며 '오늘 진짜 잘 왔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 따뜻한 식사 속에는 자연의 맛뿐 아니라, 추억이라는 양념이 듬뿍 배어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 밖으로 나오니, 제부도의 노을이 바다 위로 붉게 퍼지고 있었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 너머로 해가 천천히 내려앉고, 마치 우리에게 '잘 다녀가라'라고 인사하는 듯했다. 우리는 잠시 해변에 앉아 그 붉은빛을 바라보며 하루를 되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