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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시 당일 여행 - 동구릉, 장자호수공원, 망우산 묘역

by 감사하쟈 2025. 4. 2.

동구릉 주변
동구릉 주변

구리시 당일 여행, 동구릉

구리시에서의 당일 여행은 조선의 시작을 품고 있는 역사적인 곳인 동구릉에서 시작했다. 아침 공기를 가르며 도착한 이곳은 도심 한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고요함이 흐른다. 동구릉은 조선 왕조를 연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을 포함하여 무려 9기의 왕릉이 모여 있는 유서 깊은 공간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이곳은 조선의 정치, 문화, 철학이 오롯이 담긴 거대한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입구를 지나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사계절 내내 푸르른 소나무 숲이 양옆으로 펼쳐지고, 그 안에 정갈하게 다듬어진 능역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낸다. 특히 건원릉 앞에 서면, 조선을 세운 왕의 무게가 공간 전체를 감싸는 듯한 묵직함이 느껴진다. 능의 구조와 배치는 조선 시대 풍수지리 사상을 반영해 설계되었고, 실제로 각 능에는 그 시대의 정치적 상황과 왕의 성향이 반영되어 있다. 예를 들어 문종과 현덕왕후의 능인 현릉은 부부가 나란히 잠든 유일한 능으로, 조선 왕실의 가족애와 따뜻한 인간미를 보여주는 예다. 이른 아침 방문하면 사람도 적어 고요한 분위기에서 여유롭게 돌아볼 수 있다. 정돈된 숲길을 따라 천천히 걷는 동안,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과 바람 소리, 그리고 간간이 들려오는 새소리가 마치 과거로 연결된 문을 열어주는 듯하다. 해설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각 능의 의미와 이야기를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지만, 혼자만의 사색을 즐기기에도 더없이 좋은 장소다. 동구릉을 거닐다 보면 수백 년 전 사람들의 생각과 신념, 그리고 죽음을 대하는 방식까지 엿볼 수 있다. 그 안에 담긴 겸허함과 조화로움은 오늘날 우리가 잊고 살던 무언가를 조용히 일깨워준다. 잠시나마 시간을 내려놓고 왕들의 안식처를 거닐며, 우리의 뿌리와 과거를 되새겨보는 것이 이번 여행이 전해주는 첫 번째 메시지였다.

장자호수공원과 고구려대장간마을

동구릉에서의 경건한 시간을 뒤로하고, 나는 도심 속의 평화로운 쉼터인 장자호수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구리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산책 명소이자, 계절마다 풍경이 달라지는 아름다운 호수 공원이다. 장자호수를 중심으로 조성된 산책로는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을 만큼 잘 정비되어 있었고, 호숫가를 따라 이어지는 벤치와 정자들 중 한 곳에서 머무는 동안 잠시 여유를 느꼈다. 물 위로 반사되는 하늘과 나무, 잔잔한 물결 위를 부유하는 오리 떼, 그리고 이따금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일상에 지친 마음을 차분하게 감싸준다. 공원 한편에는 조각공원, 생태연못, 야외무대 등의 시설이 마련되어 있어 여러 가지 즐거움을 준다. 공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나는 장자호수공원에서 차로 몇 분 거리에 위치한 고구려대장간마을로 향했다. 이곳은 고구려의 철기문화와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된 역사 테마공간으로, 과거 아차산 일대에서 발굴된 고구려 유적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마을 안에는 고구려식 가옥, 대장간, 무기 전시관 등이 실제 모습처럼 재현되어 있고, 곳곳에 설치된 모형과 설명판 덕분에 누구나 쉽게 고구려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대장간 체험존에서는 무기를 만드는 장인의 모습을 재현한 디오라마가 전시돼 있어 흥미로웠고, 직접 화살 만들기나 갑옷 입기, 활쏘기 체험도 했는데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이곳은 체험을 통해 직접 고구려인의 삶을 느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적 가치도 높다. 나는 마치 시간여행을 떠나 과거 전사들의 마을에 잠시 머문 듯한 기분으로 이곳을 걸었다.

망우산 묘역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는 구리와 서울의 경계에 자리한 망우산 묘역이었다. 처음엔 '공동묘지'라는 단어가 주는 다소 무거운 느낌에 망설임이 있었지만, 막상 도착해 보니 그곳은 생각보다 훨씬 넓고 조용하며, 무엇보다 삶과 죽음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고요한 힘이 있는 공간이었다. 망우산 묘역은 단순한 장묘시설이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인물들이 잠든 곳으로써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바로 방정환 선생의 묘였다. 어린이날을 만든 인물로 익숙한 그는, 그저 한 명의 교육자가 아니라 '어린이는 어른보다 먼저 존중받아야 한다'는 철학을 가졌던 선구자였다. 그의 묘 앞에 서니, 유난히 따뜻하고도 슬픈 기분이 들었다. 주변에는 꽃과 손편지들이 놓여 있었고, '어린이를 사랑합시다'라는 문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한 메시지처럼 가슴 깊이 새겨졌다. 이 외에도, 시인 한용운, 화가 이중섭, 음악가 홍난파, 독립운동가 정종화 등 이름만 들어도 한국 문화와 역사에 큰 흔적을 남긴 인물들의 묘소가 이어진다. 각각의 묘 앞에는 그들의 업적을 간략히 설명하는 안내판이 있어, 산책을 하듯 걸으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삶을 되새길 수 있다. 특히 이곳은 일반적인 공동묘지와는 다르게,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숲과 어우러진 풍경 덕분에 오히려 평온한 기운이 감돈다. 망우산 묘역을 걷는다는 것은 그들이 남긴 가치와 철학을 오늘의 우리 삶에 되새기는 일이었다. 그들은 비록 육신은 떠났지만, 남긴 말과 행동, 사상이 우리 안에 여전히 살아 있다는 걸 이 조용한 산책로가 말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