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시 당일 여행, 애기봉 평화생태공원
작년 4월 중순, 서울의 복잡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었던 우리는 김포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다소 특별했다. 바로 북한과의 경계를 마주하고 있는 애기봉 평화생태공원. 평화, 생태, 그리고 역사라는 키워드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는 말에 이끌려 그곳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자차로 약 1시간 정도, 김포시 하성면에 위치한 이 공원은 한강 하구와 북한 개풍군이 바로 눈앞에 보일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 마치 미술관 같은 감각적인 건물 외관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내부 전시관은 '전쟁과 평화', '생태와 공존', '남북의 현실'이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다양한 영상, 미디어 아트, 인터랙티브 전시가 구성되어 있었다. 단순한 전시를 넘어, 관람객이 '경계'를 마주하며 스스로 평화를 사유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식이 인상 깊었다. 옥상 전망대에 오르니 광활한 하늘 아래 흐르는 한강 하구, 그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북한의 마을들이 있다. 맑은 날에는 개성 송악산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간 날은 연무가 살짝 껴 흐릿하지만 오히려 그 안갯속 풍경이 더욱 몽환적이고 감성적이었다. 조용한 정적 속에서 바람 소리와 망원경을 조절하는 소리만이 들리는 공간이다. 철조망 너머로 바라보는 북녘 땅은 우리에게 낯설고도 익숙한 감정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이곳의 이름 '애기봉'은 병자호란 때 피난 간 여인이 애타게 남편을 기다리며 기도했던 데서 유래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그리움과 기다림이라는 감정이 덧씌워져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주차도 편리하고, 입장료도 무료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이곳은, 평소 우리가 접하기 힘든 경계의 의미를 되새기기에 정말 적절한 장소였다. 애기봉 평화생태공원은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역사와 평화의 가치를 한 장의 풍경처럼 펼쳐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김포라는 도시가 이렇게 깊이 있는 경험도 선사할 줄은 몰랐다. 우리는 다시 차에 올라 다음 장소로 향했다.
수변공원과 라베니체
애기봉에서 벗어나 30분 정도 차를 달려 한강신도시에 도착했다. 김포시 구래동과 장기동, 운양동 일대를 중심으로 조성된 이 신도시는 도심의 편리함과 자연의 여유로움을 동시에 갖춘 곳이다. 우리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수변공원 중에 장기호수공원이었다. 이 공원은 도심 한복판에 넓게 펼쳐진 호수를 중심으로 산책로, 쉼터, 자전거 도로, 벤치 등이 잘 조성돼 있어 평일 오전인데도 산책을 즐기는 주민들로 제법 활기가 있었다. 4월 중순의 공원은 초록이 본격적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시기. 나무마다 연둣빛이 번지고, 호수 가장자리에 핀 봄꽃들과 억새는 따뜻한 햇살 아래 반짝이며 우리를 반겼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가끔씩 갈매기와 오리들이 호수를 가로지르며 작은 파동을 만들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잔잔히 들려오는 풍경은 마치 한 편의 따뜻한 시처럼 다가왔다. 공원 산책을 마친 우리는 도보로 이동 가능한 거리의 라베니체로 향했다. '작은 베네치아'라는 애칭답게, 수로를 따라 유럽풍 건물이 늘어서 있는 이곳은 낮에도 예쁘지만 해 질 무렵엔 더욱 황홀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라베니체 브리지를 건너며 바라본 수면 위의 반사광, 노을빛에 물든 건물 외관, 그리고 그 속을 천천히 산책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브리지 바로 앞의 루프탑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따뜻한 카페라테 한 잔과 함께 바라보는 이국적인 풍경은 마치 해외 여행지에 온 듯한 착각마저 들게 했다. 분위기를 충분히 즐긴 뒤에는 근처 구래역 먹자골목에서 식사를 해결했다. 이곳에는 도시의 감성과 자연의 여유, 그리고 잘 정돈된 라이프스타일이 공존하고 있었다. 젊은 커플부터 아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모습에서 이 도시가 얼마나 잘 조성되어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라베니체의 수로를 따라 걸으며 봄의 빛과 바람을 온몸으로 느낀 시간이었다.
김포쌍용자동차 박물관
김포 당일치기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조금은 독특하고 마니아적인 장소였다. 바로 김포쌍용자동차박물관이다. 처음 이곳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자동차 박물관이 김포에 있다고?'라는 호기심에 찾아보니 국내 유일의 쌍용차 중심 자동차 전시관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매력적인 곳이었다. 내비게이션을 따라 도착한 박물관은 생각보다 아담한 규모였지만, 내부에 들어선 순간 진짜 자동차 애호가들의 천국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전시장에는 쌍용자동차의 대표 모델들이 연대순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우리가 기억하는 '코란도', '무쏘', '렉스턴', '체어맨' 같은 SUV와 세단들부터, 한정판 모델, 콘셉트카, 군용 차량까지 그 종류가 다양했다. 전시차마다 해당 연식, 배경, 개발 스토리 등을 정리한 설명판이 함께 놓여 있어 자동차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아도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그중 특히 인상 깊었던 건 1980~90년대 국내 자동차 디자인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섹션. 지금 보면 투박한 듯하면서도 기능에 충실한 라인이, 당대의 감성과 철학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친구는 전시된 차량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살펴보며 어릴 적 기억을 꺼내 놓았고, 나는 생각보다 훨씬 세련된 전시 구성에 놀라움을 느꼈다. 내부에는 일부 차량의 시트에 앉아볼 수도 있고, 소장자 해설이 제공되는 날엔 직접 설명을 들으며 관람할 수도 있다. 차량 수에 비해 전시관은 작지만, 알찬 구성 덕분에 1시간 반 정도는 금세 흘러간다. 박물관을 나오며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 예상치 못한 만족을 느꼈다. 역사와 자연, 감성에 이어 산업까지 접목된 김포의 매력은 틀을 넘어선 확장된 도시의 얼굴이었다. 여행의 마지막에 자동차 박물관을 찾은 건, 어쩌면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정리할 수 있는 아주 적절한 마무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