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시 당일 여행, 지행역 벚꽃길과 공원
지난 주말에는 나만을 위한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요란한 알림도, 정해진 약속도 없는 그런 날을 보내고 싶었다. 동두천은 그날 나의 목적지가 되었다. 평소엔 평범한 역처럼 느껴지는 '지행역'에 내렸을 때, 예상하지 못한 풍경이 나를 반겼다. 역 근에 펼쳐진 벚꽃길은 마치 분홍빛 터널처럼 환하게 나를 감싸고 있었다. 가지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은 봄의 절정을 알리듯 바람에 춤을 추고 있었고, 가벼운 옷차림의 사람들은 그 풍경 속에 흠뻑 빠져 있었다. 나 역시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지만, 곧 촬영을 멈추고 그저 천천히 걷기로 했다. 사진으로 담기엔 이 분위기가 너무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꽃잎이 어깨 위에 살포시 내려앉고, 바람은 머리카락을 간질였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기분이었다. 벚꽃길 끝자락에 다다르니 자연스럽게 여러 공원을 지나갔다. 평범한 공원일 줄 알았던 한 곳은 생각보다 훨씬 크고, 무엇보다도 분위기가 무척 따뜻했다. 넓은 잔디밭 위에는 돗자리를 펴고 피크닉을 즐기는 가족, 연인들이 있었고, 분수대 주변에는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고 있었다. 나는 그 사이를 조용히 걸어 다녔다. 짙은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캔커피를 꺼내 들었다. 핸드폰은 일부러 가방 안에 넣어두고, 오롯이 이 순간에 집중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잔잔한 음악을 트는 스피커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 등 모든 게 하나의 풍경처럼 어우러져 있었다. 도시의 한복판에 이런 여유로운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혼자라는 느낌이 불편하지 않았다는 것. 오히려 이 조용한 혼자만의 시간이, 내가 그동안 얼마나 복잡하고 지쳐 있었는지를 깨닫게 해 줬다. 특별한 계획 없이 발걸음 닿는 대로 움직였던 이 아침은, 오랜만에 내가 나를 안아준 시간이었다.
소요산의 자재암
중앙공원에서의 따뜻한 휴식을 마치고 나서는, 이번엔 조금 더 고요한 곳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향한 곳은 소요산이었다. 그리고 그 안쪽 깊숙이 숨어 있는 절, 자재암이었다. 소요산역에서 내려 등산로를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등산이라기보다는 산책에 가까운 코스지만, 길 위에 부드럽게 내려앉은 햇살과 적당히 불어오는 바람이 걸음을 한층 가볍게 만들어줬다. 새소리가 귓가를 맴돌고, 군데군데 피어 있는 봄꽃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자연이 주는 위로란, 정말 말없이도 큰 힘이 되는 것 같았다. 자재암에 가까워질수록 주변은 점점 더 조용해졌다. 사람들의 발소리조차 줄어들고, 대신 들리는 건 나뭇잎이 부딪히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계곡물소리뿐. 절 입구에 도착했을 때, 첫인상은 단정하고 수수했다. 크고 웅장한 절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소박함이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 나는 신발을 벗고 마당에 살며시 올라섰다. 법당 앞에 앉아 향 냄새를 맡으며 잠시 눈을 감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내 마음은 오히려 꽉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마음 한편에 쌓여 있던 복잡한 감정들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자재암은 단지 사찰 이상의 공간이었다.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수도했다는 설화도, 이 고요함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적은 평일 오후였기에, 나는 법당 옆에 앉아 오래도록 앉아 있을 수 있었다.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시간은 흘렀지만 세상은 그대로였다. 그 안정감이 참 고마웠다. 자재암을 나서며 문득 떠오른 생각은, '이런 시간을 자주 가져야겠다'는 것이었다. 바쁜 삶 속에서도 가끔은 이렇게 멈춰 서서 내 마음의 안부를 묻는 시간이 중요한 것 같다. 동두천이라는 도시는 나에게 그런 시간을 선물해 줬다.
니지모리 스튜디오
소요산의 숲길과 자재암의 고요함을 뒤로하고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동두천의 가장 이색적인 장소라 불리는 니지모리 스튜디오였다. 처음 이곳을 SNS에서 봤을 땐 '정말 저런 곳이 한국에 있어?'싶었다. 그런데 막상 직접 와보니, 기대 이상이었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풍기는 그 일본 특유의 분위기. 골목마다 매달린 등불, 나무 구조물로 만들어진 상점들, 전통 복장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까지. 순간 여기가 진짜 일본인가 착각할 정도로 세심하게 연출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기모노 체험이었다. 혼자 왔지만 망설이지 않고 대여소에 들어가 기모노를 골랐다. 직원분이 친절하게 도와주셔서 편하게 입을 수 있었고, 거울 앞에 섰을 때 약간 낯설면서도 묘하게 설렜다. 처음엔 혼자 사진 찍는 게 어색했지만, 이내 적응이 됐다. 삼각대를 세우고, 타이머를 맞춰 사진을 찍고,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이 "잘 어울려요"라고 말을 건네주기도 했다. 그렇게 나만의 사진을 남기며 골목길을 걷는 기분은 묘하게도 자존감이 높아지는 느낌이었다. 찻집에 들러 말차와 전통 화과자를 먹으며 잠시 앉아있었는데, 창밖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일본 여행을 간 듯한 착각 속에서, 나는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니지모리 스튜디오는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 색다른 나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가끔은 이런 작은 변화가, 삶을 더 다채롭게 만들어주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이번 동두천 여행의 마지막 장면을 이국적인 기모노 사진으로 남겼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혼자서도 나름 괜찮았던 하루'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