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 당일 여행, 봉국사
성남시 영장산 남서쪽 자락에 자리 잡은 봉국사는 도심과 가까이 있으면서도 속세와는 전혀 다른 시간대에 존재하는 듯한 조용한 사찰이다. 고려 현종 19년인 1028년에 창건된 이 고찰은 천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단아하고도 깊은 기운을 품고 있다. 사찰로 향하는 길은 한적한 골목길과 산책로를 지나 이어지며, 길목 곳곳엔 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있어 계절에 관계없이 산책하기 좋다. 사찰로 향하는 동안 점점 차분해지는 마음은, 문득 발걸음조차 조용히 해야 할 것만 같은 고요한 분위기와 자연스럽게 조응한다. 사찰 입구에는 작지만 정성스럽게 다듬어진 일주문이 서 있다. 그 너머로 펼쳐지는 경내는 크고 화려하진 않지만, 오히려 그 소박한 규모와 절제된 장식이 이곳만의 매력을 더해준다. 대웅전 앞마당은 넓게 펼쳐져 있고, 그 중앙에는 오래된 석등과 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그 주변을 감싸는 고목들의 그림자는 마치 오랜 시간 동안 이 사찰을 지켜온 수호자처럼 느껴졌다. 대웅전 내부의 불상은 금빛으로 빛나며 고요한 미소를 머금고 있고, 조용히 흐르는 염불 소리는 공간 전체에 따뜻한 울림을 남긴다. 불교 신자가 아니어도 절로 손을 모아 경건해지는 순간이다. 봉국사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사찰 뒤편으로 이어지는 작은 숲길이다. 짧은 오솔길 형태의 산책로는 영장산의 품으로 스며드는 길로, 주변엔 대나무와 낙엽송, 이끼가 낀 바위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발에 밟히는 낙엽 소리조차 청량하게 들리는 이 조용한 숲길은 잠시 혼자만의 생각에 빠지거나,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일상의 무게를 내려놓기 좋은 장소다. 산새 소리,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그리고 한적한 공기의 결은 도시 한복판에 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게 만든다. 또한 봉국사는 명상 프로그램이나 템플스테이도 종종 운영하기 때문에 보다 깊은 경험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하루 이상의 체류도 가능하다. 주변에 영장산 등산로가 있어 봉국사 방문을 등산과 연계한 일정으로 잡는 이들도 많다. 인근에 따뜻한 차를 마실 수 있는 조용한 찻집이나 작은 한식당도 있어, 봉국사에서의 고요한 시간을 더욱 풍요롭게 마무리할 수 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새로운 장소의 화려함에 끌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조용하고 오래된 공간이 더 큰 울림을 줄 때가 있다. 봉국사는 바로 그런 곳이었다. 나 자신을 마주하고 생각을 정리하며 마음을 비우는 시간이 허락되는 장소였다.
성남시립 식물원과 율동공원
봉국사에서의 고요한 시간을 뒤로하고 향한 다음 목적지는 성남시 중원구 은행동에 위치한 성남시립식물원이었다. 작고 아담한 유리 온실 형태의 이 식물원은 도심 속 숨겨진 초록 쉼터처럼 다가왔다. 실내는 테마별로 나뉘어 정돈된 전시가 인상적이었으며, 열대식물관, 선인장관, 허브 정원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흔히 접할 수 없는 열대 식물들이 가까이에서 자라고 있었고, 바나나 나무나 커피나무를 직접 볼 수 있는 점이 특히 흥미로웠다. 식물마다 친절하게 붙어 있는 설명은 학습 효과도 높여주었고, 일부 구역에서는 향기를 맡아볼 수 있는 체험도 가능해 오감이 모두 만족되는 시간이었다. 실내가 온화한 기온으로 유지되어 있어 겨울철에도 따뜻하게 관람할 수 있는 점도 장점이다. 식물원 관람을 마친 뒤에는 성남의 대표 휴식처인 율동공원으로 이동했다. 공원은 넓은 호수와 잔디광장, 공연장, 산책로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곳이다. 봄에는 벚꽃이 만발하고 여름에는 분수와 나무 그늘이 시원함을 선사하며, 가을의 단풍과 겨울의 설경 또한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다. 호수를 따라 걸을 수 있는 데크 산책로는 가족, 연인, 반려동물과 함께 걷는 사람들로 항상 생기가 넘치며, 곳곳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잠시 쉬어가는 것도 즐겁다. 무엇보다 율동공원의 가장 큰 장점은 도심 속에서 자연을 깊이 호흡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잔디광장에서는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고, 아이들은 뛰놀며 웃음소리를 퍼뜨렸다. 성남시립식물원에서 식물과 지적으로 교감한 후, 율동공원에서 몸과 마음을 편히 쉴 수 있었던 이 조합은 아주 이상적이었다.
책테마파크에서 마무리
율동공원의 산책을 마치고 들른 마지막 목적지는 바로 그 공원 안쪽에 위치한 책테마파크였다. 책과 관련된 문화와 예술 콘텐츠가 풍성하게 구성된 이 공간은 마치 한 권의 책 속으로 직접 들어가는 듯한 경험을 선사했다. 외관은 현대적인 감각이 살아 있는 건축물로, 외벽을 따라 다양한 책 조형물이 설치돼 있어 입구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내부로 들어서면 어린이 그림책 전시관, 북갤러리, 체험공간, 미디어아트관, 북카페 등 층마다 다른 테마로 꾸며져 있다. 특히 1층에 마련된 그림책 전시관은 아이들만의 공간이 아닌, 어른에게도 동심을 일깨워주는 감성 가득한 장소였다. 그림책 원화를 감상하거나, 이야기 속 장면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어 관람객 모두가 적극적으로 책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었다. 2층 북갤러리에는 계절별, 테마별로 큐레이션 된 도서들이 진열돼 있었고, 독립출판물 코너에서는 평소 접하기 어려운 신선한 책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북카페에서 마신 따뜻한 커피 한 잔은 율동공원의 풍경과 함께 그 자체로 여유로움을 선물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녹음이 한눈에 들어오는 창가 자리는 특히 인기 있는 공간으로, 자연을 배경 삼아 책을 읽는 시간은 여행의 피날레로 완벽했다. 주말에는 작가 초청 강연, 북 콘서트, 체험형 프로그램도 열려 '단순한 독서를 넘어 책을 경험하는 공간으로서의 진가를 발휘한다'라고 한다. 조용한 문화 공간에서 책과 함께 사유하고 감성을 되새기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이 시간이 무척 특별하게 느껴졌다. 율동공원의 자연과 어우러진 책테마파크는 도시 여행의 감동을 오랫동안 마음에 남게 해주는, 진정한 '지성의 휴식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