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1박 2일 여행기, 법주사 도착
서울에서 새벽같이 일어나 속리산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면, 도시의 분주함이 차츰 뒤로 멀어지며 마음이 점점 설렘으로 채워진다. 속리산은 예로부터 '속세를 떠나 불법에 귀의한다'는 뜻을 담고 있을 만큼 유서 깊은 산으로, 특히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수려한 경관이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여정의 첫 목적지는 바로 법주사였다. 버스를 타고 속리산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한 뒤, 표를 끊고 국립공원 내를 천천히 걸어 들어가니 울창한 숲길과 계곡이 반겨주었다. 공원 입구에서 법주사까지 가는 길은 약간의 오르막도 있고, 유서 깊 사찰 풍경을 기대하며 자연스럽게 호흡을 고르게 된다. 법주사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더욱 차분해지는데, 이는 경내로 들어가는 순간 고즈넉한 전각과 오래된 나무들, 그리고 물고기 모양의 풍경소리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독특한 분위기 덕분이다. 경내에서는 법주사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인 팔상전과 거대한 석탑, 다양한 불상과 석조물이 눈길을 끈다. 특히 팔상전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목탑으로, 외형과 구조가 독특해 사찰 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사찰 내 어느 곳에 서 있든 맑고 시원한 바람이 지나가는데, 그 바람을 따라 종소리가 은은히 울리면 일상의 근심이 흩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른 아침에 도착했을 경우, 경내에 사람이 많지 않아 사진을 찍기도 좋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둘러보는 것도 좋다. 법주사에서 경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한나절이 훌쩍 지날 수도 있다. 사찰 주변 매점에서 간단한 음료나 지역 특산 기념품을 구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문장대로 출발
법주사를 한 바퀴 돌아본 후에는 속리산의 정상에 있는 문장대를 향해 본격적인 등산을 시작했다. 문장대는 속리산 줄기 중에서도 전망이 탁월하고, 비교적 많은 탐방객이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법주사에서 문장대까지 오르는 코스는 중간중간 약수터와 쉼터가 있어 쉬어가기에 좋지만, 꾸준히 오름길이 이어지기에 일정한 체력 소모를 각오해야 한다. 산길에 접어들면서 가파른 돌계단이나 흙길이 번갈아 나타나는데, 이때 주변 풍광에 집중하며 천천히 걸어가면 오히려 걷는 즐거움과 더불어 자연의 신비를 만끽하게 된다. 문장대 정상 가까이에 이르면 바람이 조금 더 거세지고, 시야가 트이며 주변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에 올라서면, 탁 트인 하늘 아래 펼쳐진 속리산 자락과 멀리 보이는 산능선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는데, 이 장관은 직접 눈으로 마주해야만 진가를 느낄 수 있다. 운이 좋으면 구름이 산등성이를 휘감아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정상을 함께 오르는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의 목적과 생각을 안고 이 자리에 섰겠지만, 숨을 고르며 한참 동안 경치를 바라보면 누구나 순간적으로 말이 줄고 자연의 위대함에 경외심을 품게 된다. 나는 물과 사과나 오이 같은 간단한 먹을거리를 미리 준비했기에, 전망 좋은 바위에 걸터앉아 땀을 식히면서 그것들을 먹으면서 잠시 체력을 보충했다. 문장대에서 내려올 때는, 올라오는 길과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져 지루하지 않다. 돌무더기가 많은 곳을 지날 수도 있고, 전나무나 소나무가 빼곡히 들어찬 숲길을 지날 수도 있다. 그렇게 문장대 등반을 마치고 나면, 어느새 흘러간 시간만큼 배도 고파지고, 저녁을 보내기 위한 숙소로 출발했다.
한옥스테이에서의 하룻밤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가며 산속의 하루도 저물어갈 무렵, 하룻밤을 보낼 한옥스테이에 도착했다. 잘 정돈된 마당과 전통 기와지붕이 어우러진 풍경이 낮 동안의 수고를 말끔히 보상해 주는 듯한 편안함을 선사한다. 한옥 대문을 들어서면, 나무 마루와 대청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옛 선조들의 생활 방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마치 과거로 시간여행을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방 안에 들어가 짐을 풀고 잠시 숨을 고른 뒤에는, 스테이를 운영하는 주인장이 직접 준비한 백숙 한 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 시간 푹 고아낸 닭고기는 국물까지 깊은 맛을 머금고 있어, 등산으로 허기진 배를 든든하게 채우기에 제격이었다. 국물에서 퍼져 나오는 향긋한 마늘과 약재의 향은 피로를 빠르게 풀어주고, 부드러운 닭살을 찢어 흰쌀밥과 함께 먹으면 몸속부터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땀 흘려 걸은 뒤에 맞이하는 저녁 식사는 너무 맛이 좋았다. 속리산의 맑은 공기와 물이 녹아든 재료로 만들어졌다는 생각에, 먹는 내내 자연이 베푼 선물에 감사하게 되었다. 식사가 끝난 뒤에는 마루에 걸터앉아 식곤증을 달래며, 마당 건너편으로 시시각각 어두워지는 산자락과 은은한 달빛이 감도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밤이 더욱 깊어지면 한옥스테이 특유의 정취가 한층 짙어졌다. 방으로 들어가 온돌에 몸을 기대면, 서늘한 바깥공기와 달리 방 안은 온기를 가득 품고 있어 절로 마음도 차분해졌다. 한옥 기둥 사이로 스며드는 약간의 바람과 한지 문 뒤에서 새어 나오는 달빛이 묘한 조화를 이루어, 전등을 켜지 않고도 은은하게 방 안을 밝혔다. 숲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와 산속에서 내려오는 바람의 속삭임이 귀를 간지럽히는 시간, 그야말로 도시에서는 누릴 수 없는 평화가 찾아왔다. 이렇게 백숙으로 몸과 마음을 든든히 채우고, 전통 한옥의 분위기를 만끽하며 하룻밤을 보냈다.
산채마을 식사
다음 날 새벽 공기가 상쾌하게 느껴지는 한옥스테이에서 잠을 깬 뒤, 창문 밖으로 바라본 속리산의 아침 풍경은 경이로웠다. 산안개가 고요히 감도는 산자락과 함께, 어제의 피로가 눈 녹듯이 사라진 듯 몸과 마음이 개운해진 기분이었다. 아침 일정을 여유롭게 시작하기 위해 마루에서 가볍게 몸을 풀거나, 인근 숲 속을 잠시 산책하며 서늘하고 깨끗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도 좋았다. 한옥에 흐르는 시간은 재촉하는 사람이 없어 더욱 느긋했다. 이제 마지막 코스로, 산채마을로 가서 지역에서 재배한 각종 나물과 채소로 만드는 산채비빔밥을 먹을 계획이었다. 속리산은 산채 요리가 유명한 곳 중 하나로, 봄부터 가을까지 계절마다 다른 산나물을 채취해 활용한다. 식당에 들어서면 갖가지 무침, 나물 반찬, 된장찌개 등 건강하고 담백한 한상 차림이 펼쳐진다. 양념이 강하지 않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요리들이 입맛을 돋우는데, 이곳의 깊고 청정한 자연만큼이나 마음까지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밥 한 숟갈에 향긋한 나물을 올려먹으며, 어제의 등산과 한옥스테이가 준 감동을 곱씹어 보기도 했다. 식사를 마친 후 주변을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추억으로 남기고 서울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1박 2일 동안 경험한, 속리산의 문장대에서 바라본 멋진 산등성이와 전통 음식, 한옥 문화 등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또 가게 될 것 같은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