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시 당일치기 여행, 오이도 선사유적공원과 빨간등대
작년 어느 주말 아침 일찍, 번잡한 서울을 떠나 가까운 경기도 시흥으로 당일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오랜 역사의 흔적이 살아 숨 쉬는 오이도의 선사유적공원이었다.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 들어가니, 어느새 나는 수천 년 전 신석기 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선사시대의 생활 모습을 생생히 재현한 움집들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공원을 걷는 동안 패총(조개껍질 무덤)을 비롯한 선사시대 유적이 곳곳에 나타났다. 패총을 실제로 보니, 과거 이곳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이 어떻게 자연과 어우러져 생활했는지 상상해볼 수 있었다. 해설판 덕분에 유적을 이해하는 재미가 있었고, 특히 선사시대 움집 내부에 들어가 그 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경험할 수 있었다.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바닷바람과 함께 상쾌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충분히 공원을 돌아본 뒤, 오이도의 명물인 빨간등대로 향했다. 오이도하면 빨간등대를 빼놓을 수 없다고 해서 꼭 보고 싶었던 장소다. 멀리서부터 그 강렬한 붉은색 등대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여기야, 오이도의 상징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등대 위로 올라가는 길은 약간의 계단을 오르는 수고가 있었지만, 등대 꼭대기에서 바라본 바다 전망은 그 수고를 충분히 보상해주었다. 맑고 투명한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작은 어선들이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풍경은 참으로 여유롭고 아름다웠다. 등대 근처에는 유명한 조개구이 식당이 여러 곳 있어 신선한 해산물로 배를 채우는 즐거움까지 누렸다. 불판 위에 지글지글 익어가는 조개와 함께 차려진 미역국, 김치, 간장게장까지 푸짐했다.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먹은 싱싱한 조개구이와 회는 힐링 그 자체였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한 여행의 피로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갯골생태공원
오이도에서 바닷바람을 충분히 느낀 후, 다음 목적지인 갯골생태공원으로 향했다. 시흥의 자연 생태를 체험할 수 있는 이 공원은 오이도에서 차로 20분 정도 거리로 매우 가까웠다. 도착하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넓은 갯벌과 갈대숲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공원 입구에서부터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 편안한 마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갯벌 특유의 시원한 공기와 갈대가 흔들리는 모습은 도시 생활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깨끗이 날려주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니 공기 속에서 흙 냄새, 물 냄새, 풀 냄새가 섞여 자연의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갯골생태공원의 가장 큰 매력은 생태 관찰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조성된 나무 데크길이었다. 갯벌 위로 길게 뻗은 데크를 따라 천천히 걷는 동안, 발밑에서는 조개가 움직이고 게가 기어 다니는 모습도 간간이 보였다. 갯벌의 모습은 때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여러 곳에 설치된 안내판은 이곳의 다양한 생물과 환경의 중요성을 이해하게 도와주었고, 생태공원 내의 조용한 분위기는 마음까지 차분하게 만들었다. 갯골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에 올라가자, 광활한 갯벌과 갈대밭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 순간 사진을 찍는 것도 잊고 멍하니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걷다 보니 갯벌 위를 나는 새들과 갈대 사이를 지나는 바람 소리만이 들렸다. 주말이라 산책하는 사람들과 자전거 타는 사람들, 가족 단위로 소풍 온 사람들로 꽤 붐볐다. 나도 준비해 간 커피를 마시며 작은 피크닉처럼 즐겼다. 갯골생태공원의 풍경은 시각적인 즐거움뿐만 아니라 청각적인 평온함까지 선물해줬다. 스마트폰을 꺼내는 것도 잊고, 바람 따라 흔들리는 갈대와 새소리에 귀 기울이며, 오랜만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졌다. 오랜만에 자연 속에서 걷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고, 도시에서의 바쁜 삶에서 벗어나 진정한 힐링을 경험할 수 있었다.
물왕호수에서 마무리
갯골생태공원에서 느긋하게 자연을 즐긴 후, 시흥 여행의 마지막 코스로 물왕호수를 찾았다. 이름부터가 어딘지 모르게 시적인 느낌이 드는 이곳은 도심에서 멀지 않지만, 한 걸음만 들여다보면 마치 별장지 같은 조용한 분위기를 풍긴다. 도착했을 때는 해가 서서히 저물고 있었고, 호수 위로 노을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걷는 동안, 잔잔한 물결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에 마음이 차분해졌다. 호수를 한 바퀴 천천히 돌며 호수 위에 비친 풍경들을 사진으로 남겼다. 곳곳에 벤치가 놓여 있어 커플들이 조용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가족 단위 나들이객도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호숫가를 걷다가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외관부터 예쁜 목조 건물로 되어 있었고, 창가 자리에 앉자마자 호수 뷰가 한눈에 들어왔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진한 커피 향과 함께 창밖 풍경이 어우러져 그 순간만큼은 여행이 아닌, 삶의 여유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디저트로 고른 레몬케이크도 상큼했고, 무엇보다 조용한 분위기 덕분에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음악은 잔잔했고, 나른한 오후 햇살이 커튼 사이로 비쳐들었다.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으니, 시계가 멈춘 것만 같았다. 카페를 나와 호수 근처를 다시 걷는데, 이번엔 조명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가로등 불빛이 수면에 반사되고, 호숫가를 따라 설치된 은은한 조명 덕분에 분위기가 더 따뜻하고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사람들도 더 줄어들어 훨씬 조용했고, 혼자 걷기에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여행의 끝은 이렇게 조용히 마무리하는 게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흥은 가까우면서도, 생각보다 훨씬 다채롭고 깊이 있는 도시였다. 하루 동안 만난 바다, 갈대, 호수, 그리고 나 자신. 이 조합 덕분에 오랜만에 마음이 정돈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