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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당일치기 여행 - 와우정사, 법륜사, 처인성

by 감사하쟈 2025. 4. 9.

용인 와우정사
용인시 와우정사

용인 당일치기 여행, 와우정사

늦봄의 기운이 살랑이는 작년 어느 아침, 나는 조금 이른 시간에 용인의 와우정사로 향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길도 한산했고, 창문 너머로 보이는 초록빛 나무들이 마음까지 말갛게 씻어주는 듯했다. 와우정사에 도착해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입구로 걸어가자, 은은한 풍경소리와 함께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관광지보다 조용한 사찰을 찾고 싶었던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누워 있는 불상, '와불'이었다. 길이만 해도 3미터가 넘는 이 대형 불상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길게 누워 있었고, 그 모습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평화로움이 전해졌다. 와우정사의 가장 큰 매력은 이 불상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 이곳은 전 세계 불상들이 모여 있는 '불상 박물관' 같은 곳이다. 태국, 미얀마, 인도, 스리랑카 등지에서 가져온 다양한 양식의 불상이 사찰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 마치 불교 예술의 세계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각국의 불상들은 크기도 다르고 조각 스타일도 다르지만, 모두가 공통적으로 전하는 건 '평온'이었다. 나는 그 불상들 앞에서 한참을 멈춰 서곤 했다. 유난히 힘들었던 지난 일주일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그런 감정들을 고요히 내려놓을 수 있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공간은 연못과 그 옆의 목조 다리였다. 연못의 작은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느낌이 들었다. 목조 다리 위에 앉아 물결을 바라보다 보니, 오롯이 나 자신만의 시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아무 목적 없이 그저 존재할 수 있는 순간. 혼자이기에 더 특별했던 이 시간은, 와우정사의 자연과 건축, 불상의 조화 속에서 더욱 깊이 새겨졌다.

법륜사

와우정사에서의 여운을 가슴 깊이 간직한 채, 나는 다음 장소인 법륜사로 향했다. 와우정사에서 차로 불과 15분 거리였지만, 도착하자마자 완전히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곳은 언덕 위에 조용히 자리 잡은 소박한 사찰로, 화려함보다는 단아함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계절이 딱 좋았던 탓일까, 입구부터 이어지는 벚꽃길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벚꽃 잎이 휘날리는 그 길을 천천히 걷노라면 마음속 시계가 멈춘 듯 느껴진다. 나무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고, 발밑으로는 꽃잎이 차곡차곡 쌓여 봄의 따스함을 전해준다. 경내는 아주 조용했다. 대웅전 앞마당에는 누군가 놓고 간 작은 국화 한 송이가 놓여 있었고, 바람결에 흔들리는 그 꽃을 보며 나는 잠시 멈춰 섰다. 도시의 소음과 복잡함에서 벗어나 이런 정적인 풍경을 마주하는 것은 생각보다 큰 위안을 준다. 대웅전 안으로 들어서니 불상 앞에는 향이 피워져 있었고, 그 은은한 향 냄새가 마음을 편안하게 감쌌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조용히 눈을 감았을 때, 평소에는 듣지 못했던 내 안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복잡했던 감정들이 점차 가라앉고, 머릿속도 정리되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법륜사는 관광객보다는 지역 주민들이 종종 산책 삼아 찾는 장소라고 들었다. 그래서일까, 경내 곳곳에는 사람 대신 고양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나는 대웅전 옆 마루에 앉아 잠시 고양이 한 마리와 눈을 맞췄고, 녀석은 심드렁한 듯 다시 낮잠을 청했다. 그 느긋함이 부러울 정도였다. 사찰 뒤편 산책길은 평평하게 잘 정비되어 있어 천천히 걸으며 사색하기에 더없이 좋았다. 돌아가는 길에 한참을 벚꽃 아래에 멈춰 서 있었다. 핸드폰으로 사진도 찍었지만, 이 감정은 사진으로는 담기 어려웠다. 이곳에서의 순간은 마음으로 기억하는 것이 가장 정확했다.

처인성

하루 여행의 마지막 코스로 나는 용인의 대표적인 역사 유적지인 처인성을 찾았다. 와우정사와 법륜사에서의 고요한 시간을 지나, 이제는 용인의 깊은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갈 시간이었다. 처인성은 고려시대 때 몽골군을 상대로 용맹하게 맞서 싸운 전투의 현장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김윤후 장군의 이야기는 교과서에서도 접했지만, 막상 그 전장을 직접 밟고 걸으니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입구에서부터 이어지는 숲길은 생각보다 깊고, 한 걸음씩 걸을수록 긴장감과 함께 경외심이 들었다. 처인성은 일반적인 성곽처럼 거대한 규모는 아니지만, 곳곳에 남아 있는 성벽의 흔적과 지형은 당시의 치열함을 말없이 증명하고 있었다. 성 위로 올라가는 길은 오르막이지만 크게 어렵진 않았다. 다만 숲 속에서 울리는 바람 소리와 새소리가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고, 나는 나도 모르게 말수가 줄었다. 성벽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곳이 왜 방어에 유리한 지형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전략적인 요충지로서의 면모가 드러났고, 그 옛날 장수들의 분노와 결연함, 그리고 고국을 지키려는 마음이 조금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현재 처인성은 유적지로 잘 정비되어 있어 탐방로를 따라 걷기에도 좋다. 중간중간 설치된 안내판에는 전투 당시의 배경과 전략이 상세히 설명돼 있어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도 유익하다. 나는 성벽의 끝자락에 앉아 준비해 온 작은 주먹밥을 먹으며 쉬었다. 주변에는 산수유나무가 노랗게 피어 있었고, 그 노란빛이 봄 햇살과 어우러져 평화로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이곳은 나의 하루 여행에 묵직한 마무리를 선사한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