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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시 두 번째 여행 - 용소막성당, 동화마을 수목원 등

by 감사하쟈 2025. 4. 14.

원주시 용소막성당
원주시 용소막성당

원주시 두 번째 여행, 용소막성당

작년 가을, 늦잠 자던 일상을 잠시 접고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선택한 당일치기 여행지, 강원도 원주는 내게 이상적인 목적지였다. 서울에서 차로 두 시간 남짓 달리다 보면, 점점 빌딩 대신 들판과 산이 보이고 마음이 고요해지기 시작한다. 첫 방문지는 원주 용소막성당. 이곳은 1905년에 지어진 강원도 최초의 천주교 성당으로, 근대문화유산 제112호로도 지정되어 있다. 종교와 관계없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말에 망설임 없이 일정의 시작점으로 정했다. 성당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9시 무렵. 가을 아침 햇살이 붉은 벽돌 외벽에 따스하게 내려앉아, 오래된 건물 전체를 감싸듯 빛나고 있었다. 바람은 살짝 서늘했지만 상쾌했고, 성당 앞마당에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오래된 건물이지만 잘 보존된 외관과 내부는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서처럼 느껴졌다. 입구를 지나 정숙하게 안으로 들어서자, 내부는 생각보다 넓고 단정했다. 따뜻한 나무 벤치와 조명이 어우러져 있었고, 제대 위 십자가에 쏟아지는 햇살은 묘한 성스러움을 자아냈다. 그곳에서 나는 한참을 앉아 있었다. 말없이, 생각 없이. 그저 고요함 속에 나를 맡겼다. 요란한 소리 없이 마음이 정리되는 시간이었다. 여행 중 이렇게까지 조용한 순간은 흔치 않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과 빛, 주변의 정적이 어우러져 작은 기도라도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성당 바깥으로 나와 뒤편 언덕으로 조금 걸어 올라가니, 멀리 치악산의 능선이 보였다. 붉게 물든 단풍과 산 능선, 그리고 고즈넉한 성당의 모습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져 있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원주 여행의 출발점으로 더없이 적합했고, 그 여운은 하루 종일 내 마음속에 잔잔하게 남아 있었다. 나를 조금 더 다정하게 바라보게 되는 시작이었다.

동화마을 수목원

성당에서의 고요한 시간을 뒤로하고 도착한 두 번째 장소는 '동화마을 수목원'이었다. 지도에서 위치를 확인했을 땐 그저 아담한 수목원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도착해 보니 그 규모와 섬세한 구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반겨주는 커다란 곰돌이 조형물, 나무로 만든 동화 속 오두막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 조형물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것들이 유치하거나 조잡하지 않고, 정말 '어른도 힐링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가을의 수목원은 특히 아름다웠다. 붉고 노란 단풍들이 수목원의 길목마다 마치 일부러 배치한 듯 어우러져 있었고, 은행잎이 바람 따라 흩날리는 모습은 영화 속 장면처럼 황홀했다. 산책로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뉘는데, 나는 숲 속으로 이어진 조용한 오솔길을 선택했다. 걸을수록 자연의 소리가 더욱 선명해졌고, 문득 '진짜 여행은 이렇게 내 속도를 찾는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휴대폰도 꺼두고, 이어폰도 빼고, 나무 사이를 걷기만 했다. 수목원 중간중간엔 쉴 수 있는 벤치와 정자, 그리고 나무 데크 위에 꾸며진 쉼터가 있었다. 그중 한 곳에 앉아 준비해 온 보온병 커피를 마시며, 잠깐 노트에 글을 적었다. 이상하게도 그런 장소에선 문장이 술술 풀렸다. 일상에서 메모조차 버겁던 내가 자연 속에선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혼자 온 사람도 많았고, 모두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조용히 스케치를 하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수목원의 마지막 구간은 작게 조성된 연못과 목재 다리, 그리고 동화책 모양의 작은 도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앞에서 나도 한참을 머물렀다. 혼자라는 것이 외롭지 않고 오히려 온전한 나로 살아 있는 느낌. 이곳에서 나는 참 많은 위로를 받았고, 덕분에 하루의 중심이 단단해졌다. 힐링이란 단어가 이렇게 눈에 보이는 장소도 드물 것이다.

소금산 출렁다리

동화마을 수목원에서 힐링을 마친 뒤, 원주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는 조금 더 역동적인 곳으로 정했다. 바로 '소금산 출렁다리'였다. 원주의 대표적인 레저 명소 중 하나로, 이름만 들어도 기대가 되는 장소였지만, 막상 현장에 도착해 그 규모를 눈으로 확인하니 탄성이 절로 나왔다. 소금산 출렁다리는 깊고 가파른 협곡 위에 걸쳐진 길이 200m, 높이 약 100m의 거대한 현수교이다. 이름처럼 실제로 출렁이는 구조다 보니 걸을수록 발밑에서 흔들림이 느껴졌고, 처음 몇 걸음은 나도 모르게 손잡이를 꼭 잡게 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적응이 되면서 주변의 경관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발아래로는 깊은 골짜기와 맑은 물길이, 주변 산자락엔 단풍이 절정을 이루며 온통 붉고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나는 그 풍경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바람을 맞았다. 가을의 찬 기운이 뺨을 스치고, 멀리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가 협곡을 따라 메아리쳤다. 아찔함과 동시에 묘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마치 일상에서의 고민이나 피로가 다리 아래로 훌쩍 날아가 버리는 듯했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소금산 잔도라는 또 다른 명물이 기다린다. 절벽 가장자리를 따라 만든 나무 데크길로, 산악 체험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쉽게 걸을 수 있는 구조였다. 왼편으로는 바위 절벽, 오른편으로는 깊은 계곡이 펼쳐지며 걷는 내내 짜릿함이 이어졌다. 잔도 구간을 지나 전망대에 도착하면, 원주의 시가지와 치악산 자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그 풍경을 마주하는 순간, 여태 걸어온 땀방울이 단숨에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혼자 떠난 여행에서 이런 감동적인 장면을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주저앉아 숨을 고르며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니, 투명한 가을 하늘이 파란 물감처럼 펼쳐져 있었다. 바람도 선선했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말없이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들 같은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전망대 근처에는 포토존도 잘 마련되어 있어서 기념사진을 찍기에 좋았고, 안내센터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등산지도와 안내도 덕분에 돌아가는 길도 어렵지 않았다. 내려오는 길은 무난한 계단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가끔 마주치는 단풍잎이 바닥에 쌓여 바스락거리는 소리까지도 음악처럼 들렸다. 소금산 출렁다리는 스스로를 시험해 보고, 경치를 통해 내면의 울림을 느낄 수 있는 장소였다. 아찔하지만 아름다웠고, 무서웠지만 그만큼 해방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