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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당일 여행 - 두루미 서식지, 평화전망대, 고석정 등

by 감사하쟈 2025. 4. 18.

철원 여행지 중 한 곳
철원 여행지 중 한 곳

철원 당일 여행, 두루미 서식지

작년 12월 기온이 뚝 떨어진 어느 날 아침, 사람들로 북적이는 연말 분위기에서 벗어나 조용한 자연을 찾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곳이 강원도 철원이었다. 텔레비전에서 두루미가 무리 지어 나는 장면을 본 기억 때문인지,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혼자 차에 올랐다. 목적지는 바로 철원 '두루미 서식지'였다. 매년 겨울 수천 마리의 두루미가 시베리아에서 날아와 철원에서 월동을 한다는 이곳은, 새소리 외에는 아무 소음도 없는 겨울의 낙원이라 했다. 현지에 도착하자, 차창 밖으로 펼쳐진 벌판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온통 흰빛으로 물든 논 위에서 두루미들이 천천히 걷고, 간헐적으로 공중을 날았다. 철원평야 특유의 드넓은 지평선 위에, 흰 날개가 수십 마리씩 동시에 퍼져나가는 광경은 실제로 보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음악 없는 발레처럼, 조용하고 고요했지만 그 안에 살아 있는 생명의 리듬이 느껴졌다. 현지에서는 탐조 가이드도 있었고, 망원경이 설치된 관찰소도 있었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망원경을 통해 두루미의 움직임을 바라보는데, 추위마저 잊을 만큼 몰입하게 되었다. 두루미는 멸종위기종으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생태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다는 것은 꽤 특별한 경험이었다. 특히, 서로 마주 보고 목을 흔드는 인사춤을 추는 두루미 쌍을 보았을 때는, 잠시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생존만을 위해 이곳까지 날아온 존재들이지만, 그 안에 깃든 교감과 질서는 인간보다 더 평화로워 보였다. 오랜 시간 관찰을 마치고 차에 오르면서 나는 알 수 없는 충만감에 사로잡혔다. 도시에서는 쳐다보는 일조차 드문 하늘과, 일상의 소음으로 가려졌던 바람 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공존'이라는 단어의 진짜 의미를 새삼 배울 수 있었던 하루였다. 철원의 겨울은 차갑고 거칠다고만 생각했지만, 그 안에는 생명과 경이로움이 가득했다.

평화전망대

두루미 서식지를 떠난 뒤, 나는 차를 몰아 북쪽 끝자락에 있는 '철원 평화전망대'로 향했다. 사실 이곳은 여행이라기보단, 마음속에 무언가 묵직한 것을 느끼고 싶을 때 찾고 싶었던 장소였다. 분단이라는 단어는 뉴스에서만 접하던 개념이었는데, 철원은 그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체감할 수 있는 곳 중 하나였다. 전망대에 도착하니 이미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군인이 관리하는 검문소를 지나, 등록 절차를 마치고 나서야 전망대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 자체로도 이곳이 얼마나 예민한 공간인지 느낄 수 있었다. 망원경이 놓인 전망대 위에 서자, 눈앞에는 드넓은 벌판과 함께 북한의 초소, 마을, 농지 등이 실루엣처럼 펼쳐졌다. 얼핏 보면 평온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현장 안내판에는 1950년대 전투 당시의 사진과 함께 그 이후 철원의 변화가 담겨 있었다. 내 앞에 펼쳐진 이 경계의 풍경이 단지 선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수십 년간 이어진 분단의 상처라는 것이 실감 났다. 전망대 안쪽에는 전시관도 마련되어 있었는데, 북에서 넘어온 유물, 군사 장비, 그리고 실향민들의 인터뷰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그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실제 삶이었고, 그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한참을 서 있다가,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그 자리를 쉽게 떠나지 못했다.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이 땅의 현실이 이곳에서는 너무도 또렷했기 때문이다. 역사를 알고, 그 역사 위에서 나의 위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고석정과 직탕폭포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고석정과 직탕폭포였다. 두 곳 모두 한탄강을 끼고 위치한 철원의 대표적인 자연 명소였지만, 겨울에 방문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여름이면 물놀이와 산책 코스로 사람들로 붐비는 고석정은, 한겨울이 되니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절벽 위에 덩그러니 놓인 정자는 마치 시간에 동떨어진 듯 고요했고, 얼어붙은 강물 위로는 희뿌연 서리가 피어올랐다. 고석정은 조선시대 때의 정자로, 한탄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에 세워진 아름다운 구조물이다. 실제로 정자에 올라 발아래를 내려다보면 현무암 협곡과 강의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겨울에는 이 강이 거의 얼어붙어 있어, 마치 대리석 판 위에 선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나도 정자에 올라 따뜻한 핫팩 하나 들고 강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푸석한 바람과 어우러진 그 경관은, 오히려 여름보다 더 깊이 마음에 남았다.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오면 '직탕폭포'가 있다. '한국의 나이아가라'라 불리는 이 폭포는, 실제로 보면 상상 이상으로 웅장하다. 겨울이라 물의 양은 줄었지만, 폭포 주변의 바위에는 두껍게 얼음이 내려앉아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폭포 아래에는 일부 흐르는 물이 얼지 않고 부딪히며 거센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 모습은 한겨울의 정적 속에서도 살아 있는 에너지를 느끼게 했다. 이곳에서도 몇 명의 여행객들이 삼각대를 세워 사진을 찍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조용히 풍경을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나 역시 말없이 오래도록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떠나는 발걸음이 아쉬울 만큼, 겨울의 철원은 정적 속에 담긴 강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 어떤 도시의 화려한 조명보다도, 자연이 만들어낸 이 얼음의 조각들이 내 마음을 더 환히 밝혀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