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춘천 당일 여행 - 청평사, 소양강댐, 낭만골목

by 감사하쟈 2025. 4. 16.

청평사
춘천 청평사

청평사

작년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던 어느 날, 나는 오롯이 나를 위한 하루를 보내기로 결심했다. 목적지는 춘천이었는데 서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만날 수 있는 청정한 자연과 역사적인 장소들, 그리고 마음을 쉴 수 있는 공간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였다. 그중에서도 첫 번째로 향한 곳은 청평사였다. 청평사는 단순히 도보로 갈 수 있는 절이 아니다. 우선 의암호를 가로지르는 유람선을 타야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나를 더욱 설레게 만들었다. 배를 타기 위해 소양강댐 근처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여러 명의 여행자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대부분은 가족 단위나 연인들이었지만, 혼자 여행하는 나와 비슷한 사람도 더러 보여 마음이 놓였다. 유람선에 올라서자, 강을 따라 붉고 노랗게 물든 산자락이 차례로 펼쳐졌다. 잔잔한 물 위에 비치는 단풍의 모습은 마치 그림 같았고, 찬바람에 스치는 바람은 청명했다. 약 10분 정도 배를 타고 도착한 청평사는 오봉산 자락에 자리한 천년고찰이다. 입구부터 이어지는 오솔길은 떨어진 낙엽들로 카펫처럼 덮여 있었고, 걷는 내내 바삭거리는 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청평사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정갈하게 쌓인 석탑과 단정한 전각들이었다. 역사적으로는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사찰이지만, 이곳은 거창한 사찰의 위엄보다는 사람을 품어주는 듯한 따뜻한 기운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잠시 대웅전 앞에 앉아 눈을 감고 맑은 공기와 바람 소리를 들었다. 혼자였기에 가능한 고요함이었고, 이 조용함은 내 안의 소란함을 하나둘 잠재워 주었다. 잠시 후, 산 아래로 다시 내려가면서 바라본 산길의 풍경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했다. 청평사는 그렇게, 단풍보다 더 깊고 따뜻한 인상을 남기고 내 마음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소양강댐

청평사를 뒤로하고 다시 유람선을 타고 돌아온 뒤, 나는 소양강댐으로 향했다. 춘천 하면 떠오르는 상징적인 장소이자, 여전히 강력한 생명력을 지닌 수자원 시설인 소양강댐. 이곳은 단순히 기능적인 목적만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실제로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느낀 건, 그 거대한 규모와 탁 트인 풍경이 주는 압도감이었다. 댐 위로 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바라본 소양호는 거울처럼 잔잔했고, 곳곳에 물안개가 살짝 낀 모습은 마치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했다. 호수 건너편 단풍이 선명하게 물들어 있는 산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조금씩 물결치듯 흔들렸다. 호수 위에 떠 있는 작은 배들과 갈대밭, 그리고 수면에 투영된 하늘까지 모든 풍경이 마음을 정화시키는 듯한 느낌이었다. 소양강댐은 규모도 규모지만, 그 너머로 이어지는 하늘과 산의 조화가 정말 아름다웠다. 나는 전망대에 올라가 이곳의 전경을 천천히 바라보며 마음껏 숨을 들이켰다. 가슴이 탁 트이는 그 느낌은 도시에서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종류의 자유로움이었다. 나처럼 혼자 여행 온 이들도 몇몇 보였는데, 모두 말없이 풍경을 감상하고 사진을 찍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공감되는, 고요한 연대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한쪽에는 간단한 커피나 간식을 판매하는 트럭이 있어,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고 호수 근처 벤치에 앉았다. 계절이 주는 냉기와 커피의 온기가 맞물리며 그 순간이 유난히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문득, 이 여행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휴식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소양강댐은 그저 물을 가두는 댐이 아니라, 일상을 잠시 멈추고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는 거대한 거울처럼 느껴졌다.

낭만골목

춘천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찾은 마지막 목적지는 '낭만골목'이었다. 이름만큼이나 따뜻한 정취가 가득한 이곳은, 춘천의 옛 시내 골목을 예술로 재해석한 거리이다. 도착했을 때는 해가 지고 노을이 도시의 골목길에 스며들고 있었고, 그 분위기 덕분에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 속으로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곳곳에 벽화가 그려져 있고, 작은 공방이나 감성 카페들이 줄지어 자리하고 있다. 나는 문이 열려 있는 조용한 북카페에 들어가 잠시 책을 펼쳤다. 카페의 벽에는 지역 예술가들이 만든 수채화와 도예 작품들이 걸려 있었고, 따뜻함과 잔잔한 음악이 어우러져 시간마저 천천히 흐르게 했다. 혼자 하는 여행에서 이런 순간은 그야말로 보석 같은 시간이 된다. 밖으로 나와 다시 골목을 걷다 보니, 오래된 한옥을 리모델링한 갤러리도 보였다. 마침 작은 전시가 열리고 있어 잠시 들러보았는데, 춘천의 사계절을 담은 사진과 회화들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가을 단풍을 배경으로 한 시민들의 일상 사진은 나의 오늘 하루를 그대로 투영해 주는 듯해 묘하게 뭉클했다. 골목 끝자락에서 발견한 벤치에 앉아 바라본 저녁 하늘은 노을이 퍼진 분홍빛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각자 다른 삶의 속도로 걸어가고 있었지만, 모두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나 역시 오늘 하루를 향해 걷고 있었고, 지금 이 순간을 깊이 음미하고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다. 낭만골목은 이름처럼 낭만이 넘치는 곳이었고, 이 하루를 완성시키는 가장 따뜻한 결말이었다. 혼자 걷는 여행이라도, 그 길이 외롭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런 작고 소중한 순간들 덕분일 것이다. 그렇게 나는 마음 가득히 가을을 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