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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 당일 여행 - 홍천박물관, 홍천향교, 한서기념관 등

by 감사하쟈 2025. 4. 22.

홍천 박물관
홍천박물관

홍천 당일 여행, 홍천박물관과 홍천향교

작년 가을의 어느 청명한 아침, 나는 갑작스럽게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해졌다.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곳에서 역사와 마주하고 싶었다. 그렇게 무심코 내비게이션에 '홍천'을 찍고 자차를 몰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불과 한 시간 반 남짓 거리였지만, 고속도로를 벗어나 산과 강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점점 도시의 색을 지우고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강원도 홍천의 첫 방문지는 홍천박물관. 소박한 외관을 가진 이 박물관은 지역민의 삶과 문화, 그리고 오랜 역사를 차분히 기록하고 있었다. 기와와 토기, 고대 유물은 물론, 조선시대 문헌과 의복, 일제강점기 자료들까지 다채롭게 전시되어 있었고,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과거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특히 향토사 자료를 다룬 전시실에서는 관람객이 많지 않아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조용히 자료를 읽고 나오는 길에 나는 문득, 우리가 사는 이 땅의 역사는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곧이어 찾은 곳은 홍천향교였다. 홍천읍 중심가를 지나 산기슭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석화산 아래 넓은 터에 위치한 이 향교가 모습을 드러낸다.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붉은 대문과 고풍스러운 나무기둥, 기와지붕이 고요한 품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이곳은 조선시대의 유교 교육기관으로, 오랜 시간 동안 지역의 지식인과 선비들을 배출해 낸 장소였다. 해 질 녘의 부드러운 햇살이 툇마루를 비추고, 그 위로 바스락이는 낙엽 소리가 감성을 자극했다.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자니, 마치 옛 유생들이 책을 펼치며 붓을 들던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했다. 향교의 조용함 속에서 나는 일상의 번잡함을 내려놓고, 오랜 시간을 머금은 공간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여행의 절반은 이미 충분했던 순간이었다.

은행나무숲과 한서기념관

두 번째 여정 지는 가을 홍천의 대표 명소로 손꼽히는 홍천 은행나무숲이었다. 이 숲은 사설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10월이면 일반에 무료로 개방되며, 수천 그루의 은행나무가 만들어내는 황금빛 풍경 덕분에 많은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장소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눈앞이 환해졌다. 짙은 노란 잎들이 머리 위로 천장을 이루고, 발아래에는 부드러운 은행잎 카펫이 펼쳐져 있었다. 그야말로 황금빛 터널을 걷는 느낌이었다. 햇살은 숲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이 풍경을 더욱 따뜻하게 만들었고, 가을 특유의 차분한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며 마음마저 가라앉혔다. 혼자 걷는 숲길은 참으로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말없이 자연의 소리를 듣고, 잎의 흔들림을 따라 시선을 맡기고, 천천히 걷는 그 시간이 무엇보다 값졌다. 주변에는 가족 단위 관광객이나 연인들도 있었지만, 나는 일부러 인적이 드문 구석진 길을 골라 걸었다. 그 길은 내게 묘한 안정감과 위로를 줬다. 서울에서 바쁘게 살던 일상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던, 느릿한 호흡과 생각의 여유가 숲 속에서 자연스럽게 되살아났다. 은행나무숲을 나와 들른 한서기념관은 조용한 전원마을 속에 자리한 소박한 기념 공간이었다. 무궁화를 널리 알린 독립운동가 남궁억 선생의 정신을 기리는 이곳은 그의 삶과 사상을 전시하고 있으며, 기념관 주변의 무궁화동산과 복원된 모곡 예배당은 단순한 전시 이상으로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나무로 된 예배당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햇살이 유리창을 통해 반투명하게 들어와 따스한 기운을 감싼다. '신념이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마음 한편을 메웠다. 삶을 걸고 무언가를 지켜낸 사람의 이야기는 언제나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내가 지금 걷는 이 땅에도, 이런 위대한 역사의 조각들이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공작산 수타사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는 공작산 수타사였다. 홍천 시내를 벗어나 산속 깊은 곳으로 차를 몰며, 점점 도로가 좁아지고 숲이 짙어질수록 마음도 차분해졌다. 수타사는 공작산 자락에 자리한 천년고찰로, 신라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깊은 역사를 품고 있다. 절에 다다르자 맑은 계곡물소리와 단풍잎이 흩날리는 풍경이 나를 맞이했다. 붉게 물든 단풍과 고요한 사찰의 조화는 그 자체로 완벽한 풍경이었다.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오직 자연과 전통이 어우러진 정적인 아름다움이 이곳에 있었다. 대웅전을 비롯한 전각들은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오가는 사람들은 모두 조용히 걷고 있었다. 불자이건 아니건, 이곳에 오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마음을 낮추게 된다. 나는 잠시 벤치에 앉아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눈앞엔 흔들리는 나뭇잎들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과, 연못에 반사된 하늘, 그리고 절 지붕의 곡선이 어우러진 풍경이 보였다. 사찰 뒷길에는 짧은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어, 산새 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었다. 바닥에는 낙엽이 폭신하게 깔려 있었고, 간혹 청설모가 뛰어다녔다. 이 산책로는 그리 길지 않지만, 마음을 정리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길이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고민하던 여러 생각이 이 길 위에서 조금은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공작산의 품을 나설 때, 나는 분명 아침에 이 길로 들어섰을 때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혼자였기에 더욱 깊게 마주할 수 있었던 나 자신이었다.